타키투스의 연대기, 네로에 죽음으로 저항한 세네카와 에피카리스
타키투스의 연대기(박광순 옮김, 범우)를 읽다가 두 명의 장엄한 죽음을 만났다. 서기 65년, 로마 제국은 황제 네로의 폭정 아래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의 통치는 그를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살육으로 얼룩져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과 고문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타인을 배신했다. 그러나 이러한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두 사람의 이름은 인간 정신의 고결함과 굳건함을 상징하는 빛으로 남아있다. 그들은 바로 해방노예였던 에피카리스와 네로의 스승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세네카이다. 이 두 사람의 죽음은 그들의 삶보다 더욱 인상적이며, 인간의 품위와 의지에 대한 깊은 교훈을 전해준다.
네로에게 저항한 에피카리스는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의 위치에 있었던 여성이며 해방노예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로마의 고문관들은 그녀의 여성적 육체가 잔혹한 고문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 믿고 점점 더 가혹한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혔다. 하지만 에피카리스는 끝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며, 배신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초월하여 폭군 네로에 대한 항거를 지속했고, 결국 고문의 고통으로 사지가 불구가 된 상태에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에피카리스의 죽음은 단순한 희생을 넘어선다. 그것은 권력의 압박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비록 그녀는 사회적으로 약자였으나, 그 누구보다 강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불굴의 의지와 신념은 그 시대의 가장 잔인한 고문조차도 무너뜨리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마음과 영혼만은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결의를 보여주었다.
세네카는 스토아 철학자로서 평생을 철학과 명상 속에서 보냈으며, 네로의 스승으로서 황제의 폭정에도 영향을 끼치려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네로의 명령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세네카는 스토아 철학에서 강조한 이성적 죽음, 즉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몸소 보여주었다.
세네카는 자신의 팔과 발목의 혈관을 절개하며 고통스럽고 긴 죽음의 과정을 견뎠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단순한 자살이 아니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철학적 원칙을 지키며, 죽음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아내와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그녀의 고통을 염려하며 그녀가 자신의 의지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은 세네카의 인간적인 면모와 철학자로서의 일관된 신념을 드러낸다. 비록 고통스러운 죽음이었지만, 세네카는 죽음조차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려 했으며, 스토아 철학자로서의 최후를 장식했다.
세네카의 죽음은 그의 철학적 사유와 행동이 일치한 드문 사례로 기억된다. 스토아 철학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르친다. 세네카는 죽음의 문턱에서조차 이러한 교훈을 몸소 실천하며, 자신의 생애를 마감했다. 메멘토모리와 카르페디엠 정신의 철저한 실천이었다.
에피카리스와 세네카의 죽음은 당대 로마의 혼란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신념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에피카리스는 고문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고, 세네카는 철학자로서 죽음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이 믿어왔던 가르침을 끝까지 지켰다. 두 사람은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인간의 정신이 육체적 고통이나 권력의 압박 앞에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들의 죽음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사회적 위치나 상황에 상관없이, 인간은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강한 존재임을 상기시켜 준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임을 보여준다. 에피카리스와 세네카는 그들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으로도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준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되새기며, 스스로의 존엄과 신념을 지키는 법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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