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스테스의 어머니 살해에 대한 현대적 판결 A modern verdict on the murder of Orestes' mother

 



<고대 아테네 법정 오레스테스 판결에 관한 각 독서회 의견>

<Opinions of each reading group on the ruling of Orestes in the ancient Athenian court>


D독서회-15명 참가.

  무죄-3(여자 1명 남자 1)

  유죄-12


D Reading Club - 15 people participated.

 Not guilty - 3 people (1 woman, 1 man)

Guilty - 12 people


(판결 내용 정리)

이 글은 주로 그리스 비극에서 복수와 정의, 운명, 인간성과 신의 역할 등을 다룬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적 복수와 법적 정의: 사적인 복수는 허용되어서는 안 되며, 정의는 법에 의해 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인간의 행동은 신의 뜻에 의한 것이지만, 그것이 유죄와 무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보입니다.

 

오레스테스와 클뤼타임네스트라: 오레스테스는 어머니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함으로써 존속살해라는 큰 죄를 저질렀지만, 그의 행동은 아버지 아가멤논의 복수라는 신탁을 따랐기 때문에 동정의 여지가 있다고 여긴다. 이를 통해 시대에 따라 인간의 도덕적 판단 기준이 다를 수 있음을 논의한다.

 

신탁과 복수의 연쇄: 그리스 비극에서는 신탁과 복수의 연쇄가 강조된다. 오레스테스는 신의 뜻을 거부할 수 없었고, 아폴론과 아테나가 개입하면서 그의 죄는 무죄로 판결된다. 이는 신과 인간이 복수의 굴레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계사회와 모계사회의 갈등: 부계사회의 도래와 함께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 변하는 과정이 나타나며,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같은 여성의 행위가 유죄로 여겨지는 배경을 설명한다. 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가 신화 속에서도 불리하게 설정되었음을 시사한다.

 

정의와 자비: 시대와 장소에 따라 정의와 죄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으며, 고대 아테네에서는 자비로운 정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음을 나타낸다. 이 과정에서 아테네인들은 파르테논 신전 등 상징물을 통해 자부심과 자비로운 정의를 강조하려 했다.

 

이 글은 복수의 연쇄가 어떻게 비극적 사건들로 이어지는지, 정의와 죄의 기준이 변하는지, 그리고 신화 속 사건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도덕적 딜레마를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N독서회:결과는 유죄 8(3, 5), 무죄 3(2, 1)로 오레스테스는 유죄였다. 수 천 년 만에 오레스테스의 무죄 판결이 뒤집히고 말았다.

 N Reading Society: The result was 8 guilty votes (3 men, 5 women) and 3 not guilty votes (2 men, 1 woman), so Orestes was guilty. For the first time in thousands of years, Orestes' acquittal was overturned.


배심원 수는 아레이오스 파고스 법정과 똑같은 11명이었다. 아테네라는 신의 개입 없이 순수하게 인간의 판단으로 진행된 법정이다.

  

유죄를 주장한 회원은 이유를 막론하고 살인은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전 남편과 아들, 딸을 아가멤논에게 잃은 클뤼타이메스트라의 처지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클뤼타이메스트라가 아가멤논을 살인한 행위는 유죄이지만, 그에 대한 벌을 아들이 내린 행위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은 유죄 주장을 요약한 내용이다.

 

오레스테스 무죄 판결은 어머니 없이 아버지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네가 판관을 맡을 때부터 이미 예정되었다. 기울어진 운동자에서 진행된 판결인 것이다. 만약 아테네가 투표하지 않았다면 오레스테스는 유죄이다. 아테네 시민 배심원 11명의 투표수(기권이 없다는 전제)는 유죄 6, 무죄 5표이기 때문이다. 아테네 신이 한 표를 던졌기에 가부동수가 된 것이다. 그것도 아테네의 투표는 평등 투표 원칙을 위배했기에 부정행위가 아닐 수 없다.

 

아테네는 자신이 오레스테스를 위해 투표를 던진다고 알리고는 가부동수가 되면 오레스테스는 무죄라고 말한다. 오레스테스 무죄를 억지로 조작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만큼 모친살해범인 오레스테스에 대한 비난이 거셌다는 의미이다. 이는 서기전 5세기에 형성된 남성 절대 우위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아이스퀼로스 역시 그런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었다. 이 판결은 인류의 본성에도 어긋난다.. 현대 생물학자들도 인간 형질은 모계 쪽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유전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무죄를 주장한 회원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야 입장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오레스테스도 피해자이다. 선대에 일어난 복수의 악순환이라는 저주를 자신이 끊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최선의 방책을 생각했을 것이다. 오레스테스의 모친 살해는 너무나 복잡한 상황 속에 이뤄졌다. 신들도 서로 의견 달리하고, 판단을 어려워한 딜레마였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오레스테스의 판단에 수긍이 간다.

 

당시 세상은 농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부계사회가 우위를 점하던 시기였다. 게다가 오레스테스는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을 왕자였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이지만, 그녀의 정부(情夫)에게 나라를 넘겨줄 수 없는 일이다. 고도의 통치 행위를 위해 혈연도 희생시키는 일은 동서고금에서 숱하게 일어났다. 

 

B대학원생들:결과는 유죄 8(3, 5), 무죄 3(2, 1)로 오레스테스는 유죄였다. 수 천 년 만에 오레스테스의 무죄 판결이 뒤집히고 말았다.

 Graduate students B: The result was 8 guilty votes (3 men, 5 women) and 3 not guilty votes (2 men, 1 woman), so Orestes was guilty. For the first time in thousands of years, Orestes' acquittal was overturned.


배심원 수는 아레이오스 파고스 법정과 똑같은 11명이었다. 아테네라는 신의 개입 없이 순수하게 인간의 판단으로 진행된 법정이다.

 

유죄를 주장한 이들은 이유를 막론하고 살인은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전 남편과 아들, 딸을 아가멤논에게 잃은 클뤼타이메스트라의 처지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클뤼타이메스트라가 아가멤논을 살인한 행위는 유죄이지만, 그에 대한 벌을 아들이 내린 행위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은 유죄 주장을 요약한 내용이다.오레스테스 무죄 판결은 어머니 없이 아버지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네가 판관을 맡을 때부터 이미 예정되었다. 기울어진 운동자에서 진행된 판결인 것이다. 만약 아테네가 투표하지 않았다면 오레스테스는 유죄이다. 아테네 시민 배심원 11명의 투표수(기권이 없다는 전제)는 유죄 6, 무죄 5표이기 때문이다. 아테네 신이 한 표를 던졌기에 가부동수가 된 것이다. 그것도 아테네의 투표는 평등 투표 원칙을 위배했기에 부정행위가 아닐 수 없다.

 

아테네는 자신이 오레스테스를 위해 투표를 던진다고 알리고는 가부동수가 되면 오레스테스는 무죄라고 말한다. 오레스테스 무죄를 억지로 조작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만큼 모친살해범인 오레스테스에 대한 비난이 거셌다는 의미이다. 이는 서기전 5세기에 형성된 남성 절대 우위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아이스퀼로스 역시 그런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었다. 이 판결은 인류의 본성에도 어긋난다현대 생물학자들도 인간 형질은 모계 쪽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유전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무죄를 주장한 이는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야 입장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오레스테스도 피해자이다. 선대에 일어난 복수의 악순환이라는 저주를 자신이 끊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최선의 방책을 생각했을 것이다. 오레스테스의 모친 살해는 너무나 복잡한 상황 속에 이뤄졌다. 신들도 서로 의견 달리하고, 판단을 어려워한 딜레마였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오레스테스의 판단에 수긍이 간다.

 

당시 세상은 농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부계사회가 우위를 점하던 시기였다. 게다가 오레스테스는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을 왕자였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이지만, 그녀의 정부(情夫)에게 나라를 넘겨줄 수 없는 일이다. 고도의 통치 행위를 위해 혈연도 희생시키는 일은 동서고금에서 숱하게 일어났다.

 

P독서회 판결:유죄(12), 무죄(5), 유무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1), 판단보류(1)

 P Reading Society verdict: guilty (12 people), not guilty (5 people), judging guilt or innocence is meaningless (1 person), judgment withheld (1 person)

 

이 글은 그리스 신화와 비극 속 오레스테스 사건을 중심으로 인간의 운명, 자유의지, 도덕, 윤리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먼저, 오레스테스 사건을 유죄로 보는 입장에서는 그가 어머니를 살해한 것은 존속살해로, 신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 해도 정당화되지 않는 중대한 범죄로 여긴다. 복수의 여신들까지 협박한 사실을 들어 그의 행위는 유죄라는 주장이다. 또한, 모계에서 부계 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남성 중심의 판결이 오레스테스의 유죄를 이끌어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반대로 무죄로 보는 입장에서는 오레스테스가 신의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며, 그는 단순히 신의 계획에 따라 수동적으로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는 관점이다. 이들은 그의 살인이 개인 의지가 아니라 운명에 의한 것이라 무죄라고 본다. 오레스테스는 비극적 운명에 처한 인물로, 부친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죽였지만 이후로도 신에 의해 평생 고통받아야 한다. 이는 복수의 굴레에 갇혀 선택의 여지가 제한된 비극적 존재를 나타낸다. 당대의 윤리와 도덕적 갈등을 반영하며, 복수의 연쇄와 비극적 요소가 강조된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공동체에서는 가족 윤리가 공공의 윤리로 전환되는 과정이었으며, 이런 배경에서 오레스테스의 복수는 당시에 정당화될 여지가 있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 비극이 당대 윤리의 변천을 반영하며, 운명과 자유의지의 갈등을 다룬 작품으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관점에서 보면, 오레스테스는 운명을 선택할 수 없었으며 신의 명령을 따르며 비극을 맞은 존재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의 행위에는 여전히 책임이 따른다는 해석도 있다. 이는 자유의지의 필연적 결과로 비극을 맞이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운명과 자유의지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 본성을 보여준다.

 

작품 속 인물들은 그리스 신화와 사회의 상징으로 등장하며, 오레스테스 사건은 신탁과 신의 의도, 인간의 도덕적 갈등이 얽힌 복잡한 주제를 다룬다. 이 글은 오레스테스 사건을 중심으로 각 인물이 시대적, 도덕적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하며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탐구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배경>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에 가면 탄탈로스가 있다. 그가 그곳에서 받는 형벌은 참으로 가혹했다.. 비록 엉덩이까지 물에 잠겨있지만, 극심한 갈증에 허덕인다. 물을 마시려고 몸을 숙이면, 물은 밑으로 줄어든다.. 눈앞 나뭇가지에 늘어져 있는 과일도 마찬가지다. 그가 열매를 따려고 손을 뻗으면 저 멀리 달아나 버린다. 이런 탄탈로스의 형벌시시포스의 형벌만큼이나 유명하다.

 

탄탈로스는 무슨 죄를 지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 잘났다고 까불다가 받은 벌이다. 그는 제우스의 아들이다. 신과 인간 사이에 난 몸이라 신은 되지 못한다. 신과 인간 사이에 난 존재 중에 신이 된 것 디오니소스가 유일하다.

 

다시 탄탈로스로 돌아가자.. 그는 제우스의 아들이기에 신들로부터 특별대우를 받는다. 신의 대화를 엿듣고, 신의 음식인 넥타르를 마시고, 암브로시아를 먹는다. 문제는 자기만 먹지 않고 이를 지상으로 가져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나눠 먹었다는 사실. 아무리 제우스의 아들이라도 용서받지 못 할 짓이었다.

 

탄탈로스는 실수를 깨닫고 꾀를 낸다. 신들이 자기 집에 초대해 잔치를 벌이고, 그들이 마음을 살려는 작전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사달이 난다. 인간의 오만함이 발동한 것이다. 갑자기 신들의 능력을 시험하고 싶었던 그는 자기 아들 펠롭스의 고기를 잔치음식으로 내놓게 된다.

 

신들이 이를 모를 리가 있겠는가. 신들은 그에게 저주를 내린다. 신들에게 도전하고 그들의 전지전능함을 시험하려 한 행위에 대한 응징이었다.

 

다행히 펠롭스는 죽지 않는다. 신 중에 하데스에게 납치된 딸 페르세포네 걱정에 정신이 팔린 테메테르만이 펠롭스의 왼쪽 어깨를 한 점 집어먹었다. 하지만 헤르메스는 펠롭스를 살리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전한다. 테메테르는 상아로 된 어깨를 펠롭스에게 박아 넣는다. 이후 이 집안사람들에게 왼쪽 어깨 흰점이 유전된다.

 

이렇게 살아난 펠롭스는 탄탈로스의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게 된다.. 그게 바로 그리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펠로폰네소스이다. 펠롭스의 섬이란 뜻이다. 이것으로 해핑 엔딩이 아니다.

 

펠롭스는 오이노마스왕의 딸 히포다메니아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가 이 결혼을 극구 반대한다. 히포다메니아에게 장가 올 남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오이노마스왕은 이런 제안을 합니다. “구혼자는 내 딸을 전차에 태우고 30분 먼저 떠나라. 그 후 내가 너를 쫓겠다. 그때 잡히지 않으면 내 딸을 주겠다. 아니면 목숨을 뺏는다라고. 어찌 보면 참으로 쉬운 시험이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오이노마스왕은 전쟁의 신 아레스에게 얻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혼자 대부분이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런 구혼자들이 팔과 다리가 성채에 즐비했으니깐.

 

펠롭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 위안이 되는 건 히포다메니아가 펠롭스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히포다메니아는 자기 아버지 전차를 모는 헤르메스의 아들 마부 미르틸로스를 매수하라고 귀띔한다.

 

펠롭스는 전차의 쇠축 대신 밀랍을 끼우면 나라의 절반과 초야권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이렇게 해서 되레 오이노마스왕이 목숨을 잃고, 펠롭스가 나라와 미인을 얻는다. 그리고 펠롭스는 미르틸로스를 바다로 밀어버린다.

 

미르틸로스는 추락하면서 아버지 헤르메스에게 복수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런 저주를 퍼붓는다. “너와 네 모든 후손은 탄탈로스가 받은 저주 위에 또다시 나의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네 아들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서로를 미친 듯이 증오할 것이다.”라고.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미르틸로스의 저주이다. 미르틸로스가 하늘로 올라가 박힌 별자리가 마부자리이다.

 

이 저주는 이후 그대로 실현된다. 펠롭스의 아들인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는 형제인데도 원수지간이었다. 부모들은 최대한 둘을 한자리에 두지 않으려 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형제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법. 펠롭스가 죽자 왕위 쟁탈전이 벌어진다.

 

이 당시에는 왕이 될 징표가 나타나는 자가 왕이 되었던 모양이다. 아트레우스는 자기의 가축 떼 중에서 황금색 털을 가진 양을 보고는 얼굴에 희색이 만연해진다. 그 양은 털이 황금인 것은 물론 혀까지도 순금이었으니깐.

 

하지만 아트레우스가 모르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자기의 부인 아에로페가 튀에스테스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이 황금양은 튀에스테스 손에 들어오게 된다. 어느 날 백성들 앞에서 황금 양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될 것이라는 공표가 이뤄진다. 당연히 자신이 왕이 될 줄 알았던 아트레우스는 동생이 황금 양을 가져나오자 얼굴색이 하얗게 질리고 만다. 튀에스테스에게 속은 데다 도둑까지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그의 증오는 미친 듯이 불타올랐다.

 

그래서 아트레우스는 제우스에게 하소연한다. 제우스 아마 아트레우스를 편애했나 보다. 제우스는 그에게 백성들 앞에서 움직이는 태양을 정오 한 낮에 멈추게 하고, 원래 있던 방향으로 되돌려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지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왕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을 하라고 귀띔을 해준다. 태양의 신 헬리오스는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어느 한 날 아트레우스를 말대로 태양을 동쪽으로 지게 한다.

 

이제 아트레우스가 왕이 되고, 튀에스테스는 어디론가 떠난다. 하지만 아트레우스는 동생에 대한 원한을 잊지 못한다. 수소문 끝에 동생을 찾은 아트레우스는 튀에스테스를 궁전으로 초대한다. 그리고는 온갖 감언이설로 동생이 안심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둘만의 식사시간이 되자 동생에게 고기가 담긴 그릇을 동생 앞에 내놓았고, 튀에스테스는 그것을 먹는다. 그 직후 아트레우스는 그 고기가 동생 아들 둘임을 밝힌다.

 

튀에스테스는 구역질을 해 자기가 먹은 두 아들의 살을 토한다. 그리고 오직 복수만을 꿈꾸며 어느 점쟁이를 찾아간다. 그 점쟁이는 무서운 방법을 일러준다. 튀에스테스가 자기 딸을 겁탈해 낳은 자식만이 복수를 하고 있다고 말이다. 복수심에 눈이 먼 튀에스테스는 딸 펠로피아를 겁탈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나은 아들이 나중에 아가멤논을 죽인 아이기스토스다. 아이기스토스는 살인기계로 길러진다. 그는 아트레우스는 칼로 찔러 죽인다. 그 칼은 살인을 말리는 엄마이지 아버지 기준으로 누나이기도 한 펠로피아를 미리 죽인 도구였다.

 

아트레우스의 아들은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이다. 아가멤논은 트로인 전쟁에 나간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이다. 메넬라오스는 트로이전쟁의 원인인 헬레네의 남편. 아가멤논은 헬레네의 자매인 클뤼타이메스트라에게 욕망을 품었다. 그녀는 이미 튀에스테스 아들 탄탈로스(튀에스테스는 아들이 많았답니다. 이 탄탈로스는 그의 할아버지와 이름이 같습니다)와 결혼한 몸이었고, 아이들도 있었다.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아가멤논은 클뤼타이메스트라 품에 안긴 아이를 칼로 두 동강이 내고, 남편마저 죽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클뤼타이메스트라는 겁탈한 후 차지하게 된다. 클뤼타이메스트라가 이 짐승 같은 남자를 한순간이라도 사랑했을까.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아가멤논과의 사이에서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 오레스테스를 낳는다. 드디어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사냥이 여신 아르테미스가 바다에 바람 한 점 불지 않게 했다는 점이다. 아가멤논이 여신의 신성한 사슴을 사냥한 후과였다. 이때 그리스군의 점쟁이 칼카스는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면 된다고 예언한다. 결국 이피게네이아는 제물로 바쳐지고, 바람이 불어 그리스 군은 출정을 할 수 있게 된다.

 

이피게네이아는 아르테미스의 배려로 목숨은 건지지만, 클뤼타이메스트라의 남편에 대한 증오는 더욱 깊어졌다. 클뤼타이메스트라는 남편이 떠난 후 아이기스토스와 눈이 맞게 된다.

아이기스토스가 누구인가. 아가멤논의 아버지 아트레우스는 죽인 자이다. 또 클뤼타이메스트라의 전 남편과는 형제지간인 인물이다. 둘의 만남은 아트레우스 집안의 씨를 말리리 위한 최적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아가멤논을 그냥 둘리가 없다이 얘기가 아이스퀼로스의 그리스 비극 <아가멤논>의 주 내용이다.

 

아가멤논과 클뤼타이메스트라의 딸 엘렉트라는 아버지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영웅이자 우상이었다. 엘렉트라는 남동생 오레스테스를 찾아가 그 사실을 알리고, 복수를 꾀한다. 이후 오레스테스는 아이기스토스와 그의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르 살해한다. 아이스퀼로스는 이 이야기를 3부작으로 쓴다. 그게 바로 오레스테스 3부작이다.

 

오레스테스 3부작 안으로 들어가보자.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은 <아가멤논>에서 남편 살해,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에서 모친 살해를 다루고, <자비로운 여신들>에서 두 사건에 관한 재판을 하면서 완결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신화적 구조나 내용이 여전히 남아 있으나 판사와 검사, 변호사, 배심원이란 재판 시스템을 보여준다는 특징은 지닌다. 이 판결이 인류 최초로 이뤄졌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최소한 헬라스나 아테네의 운영 제도의 원형을 제시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아테네는 재판하면서 이처럼 그 판결이 일회성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사실을 누차 강조한다.

 

또 신인 자신도 심판할 권한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테나는 공동체 구성원이 판단하는 제도와 운영 방식을 채택한다. 오레스테스는 결론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그 과정은 석연치 않다. 현대의 시각으로 볼 때 비밀과 보통 투표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가 보인다. 당시 사회가 아직 신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그래도 이 판결은 제가 볼 때 네 가지 점에서 혁명적인 사건. 1.구세대 신()의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렸음을 선언하는 장면. 2. 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 넘어감. 3.혈족보다 혼인이라는 계약 관계가 더 중요해졌다는 점. 4.복수에 복수를 낳는 비극의 악순환이 재판이라는 공적 제도를 통해 끊어졌다는 사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이런 초석 위에 발전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아가멤논>

비극 <아가멤논>은 인간사에 대한 얘기여서인지 몰입도가 매우 높다. <일리아드><오뒷세이아>에 비해 분량이 짧은 데도 더 진하게 마음에 와닿은 게 많다. 이 작품은 인간 심리를 고도로 표현해내는 놀라움을 안겨준다. 공감이 가는 내용도 많아 지금 무대에 올려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 .

 

첫 페이지부터 몸에 전율이 흘렀다. 운율을 붙여서 읽고 싶을 정도로 표현력도 뛰어나다. 고전 읽기의 맛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오뒷세우스가 아내와 어린 아들을 두고 고향을 떠나 트로이 전쟁터로 가지 싫어 미친 척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구절을 접하고 <오뒷세이아>를 읽으면서 의구심이 떠나지 않았던 오뒷세우스의 행동들이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체계를 세워서 읽은 계보적 위대한 저서 독서의 필요성을 절감한 순간이다.

 

이 비극에 면사포란 단어가 나오는 게 신기했다.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검색해보니 면사포는 고기잡이 그물로 여자를 납치한 데서 유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외에도 다른 설이 많다. 면사포가 그리스 비극이 성행하던 서기전 5세기 이전부터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비극 <아가멤논>에서 발견한 셈이다.

 

이 비극 작품은 우리에게 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코러스는 슬퍼하고 슬퍼하라. 하나 결국에는 선이 이기기를이란 노래를 반복해서 부른다. 이런 코러스는 비극이 복선이 되고, 극의 방향을 결정짓고 있다. 여기서 선이란 과연 무엇일까.

 

<아가멤논>에 국한하면, 이 작품은 정부(情夫)와 눈 맞은 여인이 전쟁에서 돌아온 남편을 무참히 살해하는 패륜녀 얘기로 보일 뿐이다. 물론 클뤼타이메스트라에게 동정이 안 가는 건 아니다. 아가멤논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 데 대한 복수로 클뤼타이메스트라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의 딸을 바치는 제왕의 솔선수범이라는 주장 앞에서는 그 동정심마저 잠시 보류하게 된다.

 

한편 아트레우스 가문에 내린 저주전체를 살펴보면 클뤼타이메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가 아가멤논에게 깊은 원한을 가질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두 남녀가 아가멤논에 복수를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일리아드>에서도 아가멤논은 탐욕이 많고, 이기심이 강한 인물로 나온다. 그는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이자 여인인 브리세이스를 빼앗아 버린다. 이 때문에 그리스군 전체가 위기에 처하는 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런데도 <아가멤논> 전체 흐름은 아가멤논의 생존과 아가멤논 죽음에 대한 복수만을 진정한 정의로 규정하는 분위기이다. 남성우위의 사고가 뚜렷하다. 선과 정의에 관한 입장은 <오레스테스 3부작>은 물론 그리스 비극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이다. <오레스테스 3부작>에선 신의 판결로 일단락하지만, 뒤를 이은 비극에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우리의 판단을 기다린다. 어쩌면 선과 정의에 관한 시각은 그리스 비극에 그치지 않고 현대에서도 엇갈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요즈음 이 사회에서 난장판을 치고도 자신들이 정의라고 소리치는 몰염치한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일리아드><오뒷세우스>는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였기에 일반 시민과 병사들은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병사들을 개미떼가 몰려오고 몰려가는 식으로 표현한 대목도 적지 않다. 하나, 비극 <아가멤논>에서는 호메로스 서사시에서 전혀 비치지 않던 백성과 하급군인들의 목소리가 울려 나온다. 또 잘못된 전쟁이었다는 대사도 적지 않다. “ ‘저 사람은 전투에 능했고, 영광스럽게 전사했지, 남의 아내를 위해서.’ 이런 불평을 속삭이는 백성들 소송의 주역인 아트레우스의 형제에게 원한에 찬 증오를 품게 되었다네는 대목은 오쟁이 진 메넬라오스를 위해 수많은 남자가 전쟁에 동원돼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한 비난이 아닐 수 없다. 트로이 전쟁에서 겪었던 고통을 토로하는 전령의 말 역시 호메로스 서사시에서 찾을 수 없었던 병사들의 신음이다. 이처럼 그리스 비극은 이전의 서사시에 비해 인간 중심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리스 비극은 페르시아 전쟁 후 아테네가 최전성기일 때 번성했던 문학 장르이다. 델로스 동맹의 맹주가 되어 폴리스답지 않게 파르테논 신전이라는 거대한 건축물까지 짓던 시절이었다. 이럴 때 왜 하필이면 비극이었을까. 비극의 기원은 디오뉘소스 신을 찬미하는 제전에 불렸다는 디튀람보스, 반은 사람 반은 말의 형상을 한 디오뉘소스의 종자(從者) 사튀로스의 이름을 딴 사튀로스극에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논의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에우리피데스의 사튀로스극 <퀴클롭스>를 접할 때 시도해보기로 하자.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비극이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이다. 비극을 본 후 아테네 시민들의 심정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비극의 근본 감정은 슬픔이다. 욕망을 채우지 못했을 때 느끼는 비릿한 슬픔이 아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인 죽음이나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운명과 만났을 때 느끼는 찰진 슬픔이다.

 

그 슬픔은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뭐가 다를까. 진정한 만남은 슬픔 속에서 이뤄진다. 기쁨 속에 이뤄진 만남이라고 헛되다고 할 수 없으나 슬픔이란 시험대를 거쳐야만 진정성이 입증된다. 또 비극은 타인의 슬픔으로 현재의 자신이 존재한다는 깨달음과 맞닿아있다. “기쁨을 나누면 시기와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는 말이 없는 건 아니나 참으로 팍팍한 세상을 풍자하는 표현일 뿐이다.

 

그리스 비극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인 카타르시스가 슬픔과 만남을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통해 이런 감정들의 카타르시스를 완수한다고 말했다. 카타르시스는 정화한다’, 깨끗이 씻어낸다는 의미이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확한 사례는 아니겠으나 요즘 주위에서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 갑자기 종교를 가지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너무 고민이 없어 종교를 가진다는 것이다. 앞으로 올지도 모를 불행에 대한 공포를, 종교를 통해 환상적으로 만들어낸 공포로 둔감하게 만드는 이열치열식 처방인지 모르겠다.

 

더 성취할 게 없는 사람이 종교를 가지는 것과 그리스 비극을 보는 아테네인의 마음이 같을 리는 없지만, 자신의 고통을 씻어내려는 심리는 비슷해 보인다. 아테네인들은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인 것처럼 몰입해 고통을 체험함으로써 본인의 고통과 공포를 씻어낸 게 아닐까. 타인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통참함으로써 자기의 고통을 초월하고 극복했다는 말이다.

 

비극 <아가멤논>의 내용은 참으로 잔혹한데 살해 장면은 매우 간단하게 표현된다. 클뤼타이메스트라가 아가멤논을 죽이는 대목도 아아, 정통으로 얻어맞았구나. 치명타로다.”, ‘아아, 또 한 번, 두 번째로 얻어맞는구나라는 아가멤논의 비명에 가까운 대사가 전부이다. 풍부한 다른 표현에 비해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피가 바다를 이루는 무대를 설명하는 대사나 문구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말이다. 대부분 그리스 비극이 참혹한 살해 현장을 이렇게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이유를 비극 배우들이 입는 복장에서 찾는 시각이 있다. 커다란 자루 같은 옷에다가 불편한 가면을 쓴 배우들이 역동적인 살해 동작을 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또 관객들의 상상력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라는 설명도 설득력이 있다. 동영상이 난무하면서 상상력의 빈곤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해석이다.

 

전장에서 막 돌아온 아가멤논과 남편을 맞는 클뤼타이메스트라 대화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클뤼타이메스트라는 하녀들에게 아가멤논의 발밑에 자줏빛 융단을 깔라고 지시한다. 그리고는 그러면 뒷일은 잠도 정복하지 못 하는 내 이 마음이 신들의 도움으로 적절히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다. 이를 무심히 읽으면 클뤼타이메스트라가 전장에서 돌아온 남편을 공경하는 태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클뤼타이메스트라가 자신이 만들어놓은 함정에서 아가멤논이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음을 은연중에 비치는 것으로 읽힌다.

 

이에 대해 답하는 아가멤논의 말들도 의미심장하다. 융단을 깔지 말라는 그의 말에는 당시 아테인들의 세계관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마치 동방의 군주인 양 머리를 조아리며 큰 소리로 칭찬하지 말고, 길에 천을 깔아 신들의 시기를 사지 않도록 하시오라는 아가멤논의 말은 극 중의 트로이전 승리보다는 현실의 페르시아 전쟁에서 이긴 아테네인들의 우월 의식으로 이해된다. 페르시아 군사들은 신처럼 모시는 왕의 노예에 불과하지만, 자신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전쟁에 나선 자유민이라는 인식의 발로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동적인 노예가 아무리 많아도 능동적인 자유민 한 명을 이길 수 없다는 그리스인들의 자신감이 아닐 수 없다. 페르시아 전쟁에 실제 참전했던 아이스퀼로스는 자신들의 자부심을 아가멤논의 입을 빌려 극화한 게 아닐까.

 

행복한 가운데 삶을 마감하는 자만이 축복받은 자라 할 것이오라는 아가멤논의 말은 곧 살해당할 그의 불행한 앞날을 예고하는 대사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아무리 높은 직위와 많은 부를 가지고 있더라도 죽기 전에 불행을 당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그리스인들이 인생관도 담고 있는 내용이다. “사람의 성패는 관을 덮기 전에는 모를 일이다라는 우리 속담과 일맥상통한다.

 

아가멤논이 이끄는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소식이 미케네까지 전해지는 봉화 루트도 <아가멤논>의 읽은 재미를 더하게 한다.

 

기원전 534년경 봄철 디오뉘소스 축제에서 비극경연대회가 처음 열렸다. 아테네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집권하던 때이다. 이 대회는 국가가 주재하는 행사였다. 이 특징을 헤아리기 위해서 디오뉘소스’, ‘참주’, ‘경연등의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오뉘니소스는 생명력을 상징한다. 디소뉘소스는 올림포스 신들에 못 끼는 존재였다. 신과 인간 사이의 속성을 모두 가진 신이었다.

 

이는 비극경연대회가 평민 중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올림포스 신들을 다룬 호메로스 서사시가 귀족의 문학이었다면, 그리스 비극은 평민의 문학인 것이다. 참주가 일종의 전제 군주이었지만, 귀족 계급에 대항하면서 생긴 정치 형태였다. 또 자연과 농촌의 생명력을 뜻하는 디오니소스를 모시는 축제가 아테네라는 도시에서 대대적으로 열렸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이를 종합하면 평민이 중심이 된 아테네라는 도시의 생명력을 키우기 위해 디오뉘소스 축제가 열렸고, 그에 따라 비극이 자리 잡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많은 그리스 비극 작가가 정치가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니체가 남겼다는 디오뉘소스의 미소가 올림포스 신들을 낳았고, 디오뉘소스의 눈물이 사람을 낳았다는 말의 의미를 그리스 비극을 읽는 내내 새겨볼 일이다.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아가멤논의 딸 엘렉트라에서 이름을 딴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이는 3~5, 곧 남근기(男根期)의 여아(女兒)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살해 욕망을 품게 된다는 의미를 지닌 칼 쿠스타프 융(C.G. Jung)의 이론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여성형이라 일컬어진다. 엘렉트라는 아버지가 왕비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情夫)인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살해되자 동생 오레스테스와 함께 어머니와 정부를 살해하는 인물로 나온다. 이러한 그녀의 아버지(남근)에 대한 집념과 어머니에 대한 증오는 오이디푸스의 근친상간, 부친살해와 정확히 대칭을 이루고 있다. 융은 이에 주목함으로써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러한 융의 이론이 어쩐지 견강부회라는 느낌이 떠나질 않는다. 여성 입장에서 회고해 보건대, 어릴 때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아빠가 장난으로 너 커서 아빠와 결혼해야지라고 하면 못 이기는 척 그렇게 하겠다고 한 적은 있다. 하지만 그건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일 뿐이었다.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일반화하기 어렵다. 모녀간 사이가 친한 경우가 많지만, 딸들이 아버지와 아주 친하고, 어머니와 데면데면한 사례도 적지 않다. 어떤 딸은 아버지와 함께 다니는 게 편하다며 부녀지간에 여행을 자주 다닌다.

 

이렇게 아버지를 편하게 대하는 게 그 존재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는 심리일 수도 있다. 아버지를 멀리하고, 아버지를 어렵게 대하는 심리가 역설적으로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결과라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융의 이론처럼 대하는 그런 경우를 지칭하는 한정된 개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콤플렉스를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 남녀가 다르다는 분석이 있다. 여아는 어머니와 동질 의식을 느끼는 야합을 통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남자는 아버지의 권위에 굴복하면서 탈출구를 찾는다는 것이다.

 

클뤼타이메스트라는 나그네에게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데려오라고 유모에게 명령한다. 그녀는 무장 병력과 함께 오라는 말도 함께 잊지 않는다. 나그네는 오레스테스가 변장한 인물이다. 하지만 유모는 도중에 코러스장과 만나면서 생각이 바뀐다. 유모는 아이기스토스에게 혼자오세요, 겁내실 것 없어요. 반가운 소식이에요라며 안심시킨다. 이로 인해 오레스테스는 아이기스토스를 손쉽게 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대목은 현재 우리 사회나 조직에서 일어나는 의사 전달 실태를 떠오르게 한다. 실제 리더나 상급자의 지시가 현장에 전달될 때 많은 왜곡이 일어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유는 하나둘이 아니다.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처럼 중간에 누가 의도적으로 내용을 조작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전달자가 의미를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 자신의 이해관계나 선입관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확대· 축소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우연히 내가 전달한 말이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퍼져나가는 걸 목격해 무척 놀란 경험이 있다. 건강한 조직의 척도가 원활한 소통이라는 말이 이런데서 나오는 게 아니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년 부장이 어느 날 앞으로 중요한 내용은 전체 회의를 통해 전달하겠다고 발표했다. 나중에 딴 소리를 하는 개인이 많아서 아예 모두가 듣는 장소에서 전달사항을 밝히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별로 효과가 나지 않는 듯 했다.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말이 들었는데도 서로 해석이 다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약이나 지시, 전달을 문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이 기록이 어려우면 SNS나 휴대폰 문자 등이라도 이용해야 한다. 물론 문서화가 능사는 아니다. 양쪽이 확인 도장이나 사인을 하고 나서도 이견을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기스토스 죽음에 관한 얘기를 접하면서 그가 오레스테스에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호메로스와 아이스퀼로스가 다르게 묘사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고대 그리스 고전을 읽다 보면 이런 경우를 자주 발견한다. 지역이나 기록, 저술자의 신화 이해도, 서사시와 연극(비극)이라는 장르 등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이해된다.

 

아이기스토스를 나쁜 사람으로만 볼 수 있는가. 그가 아가멤논을 죽인 것은 복수일 뿐이지 선과 악으로 나눌 성질은 아니지 않는가. 오르스테스 3부작은 이런 의문을 늘 갖게 한다. 신화에 따르면 아이기스토스는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복수를 위해 만들어낸 살인 기계나 다름없다. 그래서 아이기스토스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기회도 없이 태어난 불행한 존재일 수 있다. 또 그를 갖은 악행을 저질러온 아가멤논을 마침내 죽인 영웅으로도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중국 무협영화에선 아버지의 원한을 잊지 않고 지구 끝까지라도 좇아가 원수를 갚은 아들을 의협심 깊은 인물로 묘사하고 있지 않은가.

 

클뤼타이메스트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녀와 오레스테스가 나누는 대화 내용이 흥미롭다. 그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잘못을 말하려거든 네 아버지의 잘못도 말해야지.” 아가멤논이 그녀의 가족을 몰살하고, 그녀를 겁탈했던 일을 상기하자. 하지만 오레스테스의 반응은 차갑다. “하지만 남편의 수고가 집 안에 앉아있는 아내를 부양하지요.” 철저한 가부장적 사고이다.

 

여기서 신탁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와 그녀의 정부를 죽이라는 아폴론을 신탁을 받았지만, 아이기스토스는 그렇지 못했다. 결국 신탁이 정의와 불의를 가르는 기준점이 된다는 의미다. 이 신탁은 당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관습이나 제도와 부합하는 행위를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사에 있어 분쟁의 원인이나 잘못이 일방적으로 규정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럴 경우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탁을 빌미로 남성 우위의 사회 질서를 대변한 게 아닐까.

 

이러한 남성 우위의 질서는 재산 소유와 직결된다. 1만 년 전 인류가 근력이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농업사회로 접어든 이후 남자 위주로 재산 상속이 이뤄졌다. 이런 경제적 승계는 국가와 가문의 권력 승계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정부(情夫)가 오쟁이 진 아버지를 죽였으니 아폴론은 아들에게 그런 신탁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폴로 신의 성격이 혼돈의 세계에서 질서 있는 세계로 나가는 것을 상징하는 신이라는 점도 이 비극 작품의 줄거리를 이해하게 만든다.

 

이런 측면에서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의 행동을 권력과 재산을 보호하려는 행동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만약 어머니를 용서한다면, 결국 아이기스토스가 왕위와 재산을 모두 차지해버리기 때문이다. 본래 목적은 권력과 재산의 보호이고, 정의와 신탁은 허울 좋은 명분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뜻이다. 우리가 진리인 양 떠받치는 권선징악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그리스 비극을 대하면서 우주선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을 말하는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이란 책이 떠올랐다. 지구 껍데기에 붙어사는 인간은 바이러스나 다름없다. 참으로 하찮은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는 존재의 의미와 이유를 고뇌하면 살아가고 있다. 이는 다시 신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되돌아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이란 작품은 신의 존재를 좇아가는 소설이다. 여기서 최종적인 신이 큰 눈(大眼)으로 나온다. 그 존재가 바로 독자(자기 자신)가 아닐까. 신이란 자체도 결국 개인에 따라, 즉 주관에 따라 다른 것이다. 아폴론의 신탁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비극을 보러 간 고대 그리스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또 그들은 비극을 본 후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정화)를 얘기했고, 니체는 삶에의 의지를 말했다.

 

이천 오백 년 후 부산에서 그들의 존재와 마음을 희미하게나마 추측할 수 있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최근 부부끼리 함께 창업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그 과정에서 자주 다퉜다. 결혼 이후 처음 한 부부 싸움이었다. 속이 상한 채로 그리스 비극 책을 들었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서서히 아픈 마음이 사그라지는 듯했다. 지금 내가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그 고통의 크기가 클뤼타이메스트라, 캇산드라, 엘렉트라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쩌면 그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진정한 만남이 무엇인지 나도 모르게 깨달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형제자매 간인 고통과 슬픔이 바로 사람과 사람을 진실한 관계로 맺어주는 아교인 것 같다. 이런 마음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인지 니체의 삶에의 의지인지 무척 궁금하다.

 

우리는 나그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에서 클뤼타이메스트라는 나그네로 변한 오레스테스를 반갑게 맞아들인다. 그가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낭보까지 들고 왔으니 더 반가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나그네는 자신을 죽이려고 온 저승사자였다.

 

하지만 고대 서양 문학에서 나그네를 환대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다. 동양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다. 일본 바쿠후 시절에 있었던 실화이다. 1543년 포르투갈인을 태운 배 한 척이 명나라 닝보(寧波)로 가던 도중 폭풍우 때문에 규슈의 남단에 위치한 다네가시마(種子島)에 도착했다. 이때 젊은 영주는 놀라운 위력을 가진 서양식 철포(조총)의 매력에 푹 빠진다.

 

그 영주는 엄청난 금액을 주고 그 조총을 사들여 제조법을 마침내 터득한다. 통신과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나그네는 새 소식과 기술을 전하는 존재였다. 이런 두 측면을 볼 때 옛날에 나그네를 대하는 마음이 이중적이지 않았을까. 적인지 아군이지 구분하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현대에서는 개인이나 조직에 나그네는 바로 새로움이다.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기에게 새로움을 줄 수 있다면 나그네이지 않을까. 그러면 면에서 <위대한 저서>도 나그네이다. 클뤼타이메스트라는 나그네 오레스테스를 너무 믿어서 불귀의 객이 되었다.

 


<‘자비로운 여신들>

  아이스퀴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은 <아가멤논>에서 남편 살해,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에서 모친 살해를 다루고, <자비로운 여신들>에서 두 사건에 관한 재판을 하면서 완결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자비로운 여신들>은 신화적 구조나 내용이 여전히 남아있으나 판사와 검사, 변호사, 배심원이란 재판 시스템을 보여준다는 특징은 지닌다. 신에게 모든 판단을 맡기거나 개인 간의 복수로 점철된 이전이나 다른 이야기와 차별성을 보이는 것이다.

 

이 판결이 인류 최초로 이뤄졌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최소한 헬라스나 아테네의 운영 제도의 원형을 제시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 배심원 회의는 아이게우스 백성들을 위해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존속할 것이리라.” 아테네는 재판하면서 이처럼 그 판결이 일회성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사실을 누차 강조한다.

 

아이스퀼로스는 이 판결의 성격을 아테나의 대사로 설명한다. “인간들이 심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사건은 너무나 중대하노라.” 그러면서도 신()인 자신도 권한을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극심한 분노를 야기하게 될 이 사건을 심판할 권한은 나에게도 없도다.”

 

이어서 아테나는 공동체 구성원이 판단하는 제도와 운영 방식을 밝힌다. “하지만 사건이 이미 나에게 떨어졌으니 (오레스테스와 복수의 여신들에게) 그대들은 재판에서 그대들을 도와줄 조력자로서 증인과 증거들을 모으도록 하시오. 나는 이 사건을 공정하게 심판하기 위해 내 시민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자들을 선임하여 돌아올 것이요

 

오레스테스는 결론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그 과정은 석연치 않다. 아테나는 먼저 투표석을 던지며 이렇게 밝힌다. 당시에는 투표할 때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두 항아리에 조약돌을 던져 넣었다. “나는 오레스테스를 위해 이 투표석을 던지노라. 투표가 가부동수라도 오레스테스가 이긴 것이리라.”

 

이는 현대의 시각으로 볼 때 비밀과 보통 투표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당시 사회가 아직 신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실제 배심원의 표수는 가부동수였다. 아테나의 표가 아니었으면 오레스테스는 유죄라는 결론이 나온다. 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인간의 판단으로만 볼 때 오레스테스는 모친 살해범이라는 죄인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 비극의 탄생>

페르시아 전쟁은 대충 서기전 490년에서 450년까지 발생했습니다. 페르시아 원정은 3차례였지만, 실제 전투는 2차례 이뤄졌습니다. 페르시아는 당시 지중해서 인도 접경까지 이르는 대제국이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대제국으로 일컬어집니다. 하지만 그리스 연합군에게 지고 맙니다. 말이 그리스이지 아테네와 스파르타에게 박살난 겁니다.

페르시아 전쟁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상세히 다뤄집니다. 빠질 수 없는 게 3차 전쟁 때 치러진 살라미스 해전입니다. 당시 육군은 중장비 무기를 자신의 비용으로 마련해야 했기에 중산층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하지만 해군은 노꾼 위주였기에 평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페르시아 전쟁을 결정적인 승리로 이끈 살라미스 해전이후 평민의 발언권이 강해졌습니다. 이는 아테네가 민주의 꽃을 피우는 주요 요인이 됩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강국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리던 아테네 시민들이 왜 비극에 열광했을까요. 여러 해석이 나옵니다. 댓글로 각자의 생각을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해석적 질문과 답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비극은 서기 전 5세기에 아테네에서 부흥했다가, 아테네 몰락 후 사라진 장르입니다. 좁게 말하면 아테네 비극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입니다.

둘째, 그리스비극은 경연 형태로 이뤄졌습니다. 우승자가 정해진 것이지요. 경연은 디오니소스 축제와 함께 치러졌습니다.

세째, 원본들은 알렉산드리아도서관 화재로 거의 다 사라지고 남은 건 30여편에 불과합니다.

 비극의 아버지 아이스킬로스, 비극의 완성자 소포클레스, 비극의 이단아 에우리피데스 3명입니다.

아이스킬로스는 오레스테스 3부작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최초로 비극에 배우를 등장시킨 시인입니다. 탁월한 정치가이자 군인, 심오한 종교사상가로도 알려져있습니다.

소포클레스 역시 시인이자 정치가였습니다. 비극을 배우들 대사 위주로 발전시키면서 비극을 본궤도로 올린 작가입니다.

에우리피데스는 코러스(합창)을 기본으로 하는 비극의 성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을 시도합니다. 어쩌면 비극을 현대 연극식으로 바꾸었지만, 달리 말하면 비극을 비극답지 않게 변질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겠지요.

그는 또 은둔자였습니다. 정치가나 군인 등으로 폴리스 운영에 적극 가담했던 비극 작가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스 비극 경연대회에서는 비극 3편과 사튀로스 1편을 의무적으로 무대에 올려야 했답니다.

사튀로스 극은 다 없어지고, 한 편만 남아있습니다.

이처럼 허술하고 괴이한 익살극을 왜 무대에 올렸을까요. 전문가들도 머리 아파하는 숙제입니다. 대략 전문가들은 그 작품에서 미완성과 다양성과 미정과 가능성과 혼돈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흔적을 찾습니다. 사튀로스가 디오니소스 졸병들이거든요. 그리스 비극이 디오니소스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스 비극이 고대 그리스에서 어떤 위치였는가를 얘기해보겠습니다. 그리스의 시 문학은 서사시-서정시-비극-희극으로 이어집니다.

서사시는 아시다시피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가 대표합니다.

서정시는 아르킬로코스, 사포, 아나크레온 등 알만한 시인들입니다.

그 다음이 그리스 비극입니다.

아주아주 먼 옛날, 혼돈의 시대에 사람들은 무언가 질서를 찾고자 했겠지요. 경험을 거듭하다보니 어떤 규칙적인 게 있다는 걸 느꼈던 겁니다. 그건 바로 예측가능성이고 인간 사회의 유지였습니다. 그걸 주재하는 게 신이든 자연이든 인간이든, 뭐 그랬습니다. 호메로스의 작품들은 바로 그 결과입니다. 질서와 빛, 밝음의 상징인 아폴론의 세계입니다.

그리하다가 사람들은 개인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늘과 신,, 전쟁, 영웅 등은 너무 멀리 있는 대상이었지요. 그래서 서정시가 발달합니다. 객관주의가 주관주의로 변합니다.

다시 의문이 생깁니다. 서정시가 너무 자기 넋두리로 흐르자 이런 게 뭐가 문학이냐라는 반발이 생긴 것이지요.

그래서 주관과 객관을 살짝 섞은 게 비극입니다. 여기에 반론이 있지만, 전체적인 평균으로 보면 그리 보입니다. 디오니소스 신의 성격을 생각해봅시다.

https://youtu.be/p2AgZHter7Q?si=ylcSCSw6HdzAGm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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